[책속의길] 꿈같은 시간, 짙은 여운…편견 버려도 되는 ‘그해, 여름손님’

안소정 기자 승인 2020.11.25 09:20 의견 0
사진제공=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휴가는 달콤한 찰나의 꿈과 같다. 그래서 휴가가 길수록, 즐거웠을수록 후유증은 심각하다. 휴가가 끝난 뒤 허탈감과 쓸쓸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휴가의 가치와 의미가 깊었다는 것이리라. 혹은, 휴가에서의 나 자신이 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욱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넓은 포용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행에서 마음 맞는 친구나 연인을 만날 확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휴가의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를 테지만 어찌됐든 ‘특별한 순간’임엔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기간에서 피어나는 인생의 환희, 사랑은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휴가를 그린 ‘그해, 여름손님’은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여느 멜로와는 결이 다르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17살 소년 엘리오와 여름 손님으로 찾아온 철학과 교수 올리버, 뜨거운 여름 낯선 곳에서 만난 두 사람이 감정에 정신없이 휩쓸리는 과정들이 여유로운 휴가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 보는 이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성별이 무엇이고,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등 그들의 배경보다 사랑의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잊고 즐기는 휴가지 자체가 주는 낭만적 분위기의 힘이 컸다.

서로를 향한 열렬한 감정이 지나치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시간적 배경이 여름 한 복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날씨와 고즈넉한 배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그들의 감정을 단번에 체화시키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 셈이다.

결말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에 맥이 빠질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휴가가 남기는 씁쓸한 감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 책이 영화화되고, 세계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차별화에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열렬하게 짝사랑해 본 기억, 사랑에 빠지는 황홀한 순간에 대한 추억이 남은 이들이라면 ‘그해, 여름 손님’의 낭만적 분위기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미화됐을 수도 있지만, 개연성보다 분위기 묘사에 주력한 ‘그해, 여름 손님’은 그런 의심을 모두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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