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길] 난민과 마주한 한국,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이지영 기자 승인 2021.03.10 10:15 의견 0
사진제공=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사진=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세살배기 꼬마 아이가 해변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사진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 있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꼬마아이가 내전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표류하다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가슴 아팠다. 그러나 어쩐지 딴 세상 같은 일이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있지 않을 일이라는 데에 안심하기도 했다.

제주도에 예멘인 500여 명이 들어왔다는 소식에도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국민청원이 70만명이 넘어섰다는 보도에도 개인적으로 고심해 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주도가 거리상 멀었던 점도 있지만 젊은 층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거나,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의 국가에서 온 난민들이라는 점에 우려가 잇따를 때도 그들이 인정자가 되어 함께 살아갈 때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취재를 하며 난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이들을 같은 인간,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난민문제로만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난민 구호 단체를 비롯해 대부분 전문가들까지도 이들을 오직 ‘난민문제’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의견을 냈다. ‘난민’은 이미 우리 사회에 어떤 거부감을 형성하는 단어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그들이 어떤 사정으로 국가를 떠나 헤매는 표류인이 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도, 질문을 던지는 이도 많지 않다. 대중의 동의와 공감에 앞서 정부와 미디어가 행정적 계산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난민 유입에 대한 반대나 찬성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반대나 찬성도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의견임도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왜 난민이 된 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손을 떠났다. 인정받은 난민들,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난민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에서 배우 정우성의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은 유효한 책이다.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었다가 친선대사가 된 정우성의 전략은 영특하다. 그는 “난민문제에 대한 강요는 없다”는 기조 아래 난민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는 6년 여 간 만난 세계 곳곳 난민들과의 경험, 그들을 보며 느끼고 알게 된 점들을 풀어놓으면서 수많은 이들이 난민이 된 연유와 처지, 그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에 주력한다.

그는 독자 마음의 빗장을 풀기 위해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부터 꺼낸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실시한 경관정화사업으로 인해 달동네 판잣집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자신 역시 저항조차 할 수 없이 떠밀려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여기저기 쫓겨 다니는 난민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성장기의 경험이 난민을 마주하는 그의 공감을 높였고 더 적극적 친선대사로 성장시켰다. 유엔난민기구 예산은 한푼이라도 더 난민지원에 쓰여야 한다는 생각에 친선대사로서의 경비를 모두 자비로 해결한다는 대목만 봐도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책을 통해 정우성은 난민들의 현실을 알리는 것, 통상 대중이 갖게 되는 편견을 깨뜨리는 데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총에 맞아 죽은 아빠를 집 창문 너머로 보면서도 빗발치는 총알 때문에 시신조차 옮기지 못하는 상황, 나고 자란 곳에 살다가 정치적 이유로 나라를 벗어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눈앞에서 남편을 죽인 이들을 피해 도망친 임산부 등 사람들의 공감과 동질감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사례도 곳곳에서 소개한다. 이와 함께 난민이 원하는 건 편한 삶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을 뜻한다고 호소하며 대부분 난민은 3국이나 선진국의 정착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에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는 어째서 난민들에 물품이 아닌 현금으로 후원을 해야 하는지, 극빈층으로 여겨지는 그들이 왜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지에 대한 소소한 오해들에 대해서까지도 진실을 밝히려 애쓴다.

무엇보다 그는 찬성이나 반대라는 명확한 선에 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적어도 이런 저런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국내에까지 오게 됐는지 ‘인간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며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듯, 국가를 비난하고 투덜대며 살아가는 소위 ‘헬조선’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안전한 장치였는지도 알게 한다.

이번에 정우성이 내놓은 책은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난민에 대해 알 수 있는 입문서다. 그는 자신이 만난 난민들의 참혹한 현실, 그 안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만 그의 진심이 느껴져 울컥하게 되는 대목과 대비되게 너무 전문적인 단어와 일상적이지 않은 어휘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통에 그가 하는 말인지, 유엔난민기구의 설명인지 모호해지는 부분들은 다소 아쉽다.

책은 216쪽. 가볍고 작다. 정우성이 난민과 함께 찍은 사진들과 함께 간결한 문장들로 구성돼 있어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다. 정우성은 이 책 인세를 모두 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한다고 밝힌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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