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분노의 대나무숲 아닌 사회문제 해결의 장으로 성장하려면

김경오 기자 승인 2022.06.30 11:05 의견 0
사진제공=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2017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렸다.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글들은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와 분노를 더하는 모양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논란거리 해결이나 사건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글부터 아주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으로 써내려간 청원글도 허다하다. 청원글의 범위는 사회, 경제, 정치부터 방송 프로그램, 연예인, 유튜버와 관련된 일까지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이 글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가 바로 잡혀야 한다’는 심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며 바로잡히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억울해서, 화가 나서, 나라를 생각하는 진지한 마음으로 등 다양한 이유가 바탕이 되겠지만 이들 청원글이 주목받는 건 ‘분노’라는 공통분모가 형성돼서다. 여론의 공분을 일으키는 정도가 미디어 노출을 결정하고,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심리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국민청원을 둘러싼 분노의 방향이 사연 그 자체가 아닌 ‘약자를 부당하게 대하는 강자’를 향해 있다고 말한다. 최 원장은 청원 글에 동의하는 심리에 대해 “약자에 대한 동정심의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강자에 대한 분노가 강하다. ‘약자가 이렇게 피해를 받았는데 사회가 무관심하니 도움을 달라’는 게 아니라, 약자에 피해를 입히는 기성세력과 조직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원장은 “그런 측면에서 청원에 동의를 하는 행위는 청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공감한다는 의미보다 대리만족을 느끼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분노를 집단 투사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공분’으로 이어지는 이 분노는 문제를 해결할 직접적 요인일까. 또, 과연 분노란 감정으로 파생된 행보는 온전히 미래 지향적인 걸까.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마사 C. 누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철학부 교수는 신간 ‘분노와 용서’로 독자들에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스바움 교수는 2014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진행한 ‘존 로크 강좌’ 강의록을 바탕으로 펴낸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 직장 동료나 상사와 맺는 ‘중간 영역’ 등 일상적 분노의 영역과 함께 정치적 영역까지, 세 가지 영역에서 분노를 들여다보고 분석한다. 그의 주장은 한결같다. 모든 영역에서 분노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분노를 유발하는 원인과 거리를 두거나 냉정하게 법적 대응을 모색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저자는 “분노가 일어나게 된 계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적절한 감정이 될 수 있지만, 지위에 집착하고 피해를 갚아주겠다는 소망을 품으면 문제가 된다”면서 “분노가 던지는 미끼를 물고 공상적 응징으로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분노의 선한 대안으로 용서를 말한다. 허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용서를 조건부 용서, 무조건적 용서, 무조건적 사랑으로 구분하고 조건부 용서는 부당행위를 당한 사람이 잘못된 사람의 치욕을 기뻐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용서 또한 용서하는 주체가 도덕적 우월감을 풍긴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다. 그래서 그는 ‘사회가 부정하고 타락해 법적 대응이 불가능할 경우’에서도 피해 사실을 공인하고 다시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적인 예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다. 저자는 넬슨 대통령이 흑인을 괴롭히는 백인이 고통받길 바라거나 백인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인종 차별이라는 체제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정의를 위해 분노를 내려놓고 사회적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공분하는 이유에 대입했을 때 다소 원론적인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국민청원까지 하는 여론의 분노 역시 지극히 합당한 심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조언을 따를 때 조금 더 나은 사회로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분노보다는 냉철한 사고와 개선이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훨씬 도움이 된다. 물론 저자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무질서가 본능적 화를 부른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의 개선이 선행될 때 그 분노를 잠재울 현실적 해결책이 마련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일련의 사건과 피해자의 억울한 심리에 공감하고 공분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분노풀이와 감정풀이로 귀결되기 보다는 제도적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을 거치며 등장한 소년법 개정이나, 창원 유치원생 성폭행 및 최근 알려진 경기북부 학원 여강사의 초등생 성폭행 사건에 대한 미성년자 성폭행범 처벌강화 요구 등이 올바른 예라 하겠다.

다소 원론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조언과 지적이 있긴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분노와 용서에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현실 가능’한 소망이 담겨 있기에 가치가 있다. 국민청원은 일단 감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행동력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그 바람이 실천적이기 위해서는 대중이 냉철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분노가 던지는 미끼를 물고 공상적 응징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게 좋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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