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행 사건,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억대 피부 클리닉 사건.
보통 사회를 흔드는 사건들은 첫 뉴스가 나간 후에 한동안 사람들에 큰 관심을 보이며, 화제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또다른 이슈가 터지면 어느새 기억 속에 잊혀지고, 때로는 그 잊혀짐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팩트와 권력’은 시사인 탐사전문기자인 저자가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일념으로 권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거대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건 일견 초라하게 보이는 ‘팩트’라는 무기 하나다. 하지만 저자는 이 팩트 하나의 힘을 믿고 권력을 검증하고, 권력자들의 위선을 꼬집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김 전 차관은 2013년부터 진행된 검찰의 1·2차 수사 당시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올해 검찰 수사단의 재수사 끝에 구속됐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특수강간 혐의 대신 뇌물죄가 적용됐다. 권력집단의 성범죄로 시작한 이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은 드러난 걸까.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은 어떤가. 피해금액만 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사기 행각 끝에 밀항한 조희팔은 2012년 5월 사망설이 발표된 뒤 자취를 감췄다.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사기관은 여전히 피해자들의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단순히 보여주는 취재일기 형식을 띠지 않는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경우 출국 시도부터 강간 피해 여성의 생생한 육성 등 저자는 팩트를 촘촘히 엮어 권력집단의 성범죄라는 본질을 재구성한다. 조희팔 사건에서도 저자는 밀항을 노골적으로 돕고, 사망설을 주저 없이 믿는 수사기관의 한계와 이 사건으로 경제적 이익을 편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실명 거론하며 단순한 개인비리가 아님을 지적한다.
이 외에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1년 서울시장에 출마할 당시 파헤친 억대 피부 클리닉 사건은 각종 증거에도 언론을 위협하는 권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