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방송캡처)
2010년 겨울 방송됐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그야말로 열풍이었다. 보통 드라마가 끝난 후 ‘~이 남긴 것’이라는 타이틀의 종영 기사가 간혹 나오긴 하지만, 거의 모든 매체가 이와 같은 분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시크릿 가든’은 그런 류의 드라마였다. 드라마 한 편 때문에 ‘따뜻했던 겨울’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왔다.
현빈과 하지원의 팬층은 10~20대를 넘어 40~50대까지 넓어졌고, 드라마에 출연한 주조연 모두 대중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현빈과 하지원이 갔던 장소를 비롯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소품까지도 인기를 모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1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 이야기가 단지 현빈의 말 몇 마디에 책 판매량이 급증했다. 더욱이 현빈이 본 책은 도서 분류상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문학이었다. 성인으로 대상으로 한 고전문학 분류에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기본 내용만 같을 뿐, 서술하는 형태나 용어가 다르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현빈이 맡은 주원의 독백에 과감히 지갑을 열고 이 초등학생용 동화책을 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듯한 신비한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 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비하고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저 여자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시크릿 가든’ 주원의 독백 중-
가벼운 동화책이고, 드라마 속 하나의 대사지만, 많은 이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와 주원-길라임의 관계를 엮거나, 판타지 드라마인 ‘시크릿 가든’과 공통점을 묶어 해석했다. 물론 굉장히 책이 갖는 의미와 드라마가 주는 트렌디한 가벼움과 별개로 굉장히 무게를 주는 분석도 있었다.
PD저널이 “김은숙 작가는 왜 이 책을 언급했을까. 책의 결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새로운 세상에 다녀온 앨리스에게 꿈에서 깨라는 가족들의 충고로 끝이 난다. 앨리스는 새로운 세상에서 무언가를 얻었지만, 현실은 그것들을 무시해버린다. 길라임에게 몰입해 20회 동안 판타지를 경험한 우리는 앨리스와 같은 처지에 놓여버렸다. ‘시크릿 가든’을 볼 때만큼은 길라임의 ‘역전 판타지’가 현실이었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길라임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현실에서 재벌 3세와의 결혼에 성공한 비정규직 20대 여성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옥스퍼드대 총장의 둘째 딸 앨리를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 루이스 캐럴은 이 책에서 재미 외에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고 말했다. 캐럴이 살았던 19세기 영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과도한 교훈과 가르침을 주입하며 동화마저 사회적 가치를 내재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에, 캐럴은 굳이 책에 ‘무게’를 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참고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뿐 아니라, ‘시크릿 가든’에 등장한 ‘인어공주’,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가슴 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등 등장 책들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