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풍성한 콘텐츠를 안겨다줬다. 수많은 외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고 있는 걸까? 그 의문점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답은 “아니다”이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외국어가 갖는 의미를 한국어로 옮겨놓을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선이 불가할 때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 때문에 문학계는 끊임없이 직역과 의역 사이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옳은 번역일까. 어쩌면 단순히 개인적 취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보기 불편하다면 옳은 번역은 아닐 터다. 책은 분명 취미의 영역이지만 그렇기에 우리 삶에 더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번역 논란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사진=tvN '시카고 타자기' 방송화면 캡처
지난 2006년 한국문학번역원과 국회문화정책포럼 토론회에서 문화예술 분야 국내 번역이 수준 이하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이윤택 전 예술감독은 “번역 수준 때문에 작품 수준이 평가절하돼버리는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혹은 공공적 차원의 조직과 운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번역가가 단순한 언어의 전달자가 아닌 분명한 관점과 감성을 지닌 창조적 문필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국내 번역 문학계는 얼마나 진보했을까. 문학계 내 번역에 관한 화두는 직역과 의역이다. 직역의 최전선에 새움출판사가 서 있다. 새움출판사는 그간 번역 명서들을 다시 번역한 개정판을 내놓으며 기존 번역가들이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발 더 나아가 번역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고, 지원자들의 원고를 검토한 뒤 블로그를 통해 “잘 쓴 소설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따로 노는 것이 없다”며 “독자들이 혹시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수 있으니까 임의의 설명을 보태야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이미 틀린 번역”이라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확한 번역이 가장 기본적 뼈대가 되어야 한다. 김종면 서울여대 국문학과 겸임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새움출판사의 본래 취지는 맞다고 본다. 오역이 의역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된 직역을 해야 한다”면서 “일부 ‘말하고 쓰는 것은 잘 못해도 번역은 할 수 있다’는 말은 미신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스러운 직역이 좋은 번역본이라 강조했다. 피카소가 극사실주의 작가 못지않은 그림실력을 바탕으로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 같은 추상화로 나아갔듯 번역 역시 문법을 제대로 알고 문장의 뼈대를 잘 갖출 줄 아는 이가 잘 된 번역본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새움출판사의 취지는 옳지만 팍팍한 직역보다는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걷지도 못하고 뛰어선 안된다. 나쁜 말로 때려 맞추는 수준의 것보다 기초적 문법을 잘 알고 번역한 후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장의 육체도 못 옮기면서 어떻게 문장의 영혼까지 옮기겠냐”는 그의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새움출판사가 소설가들의 번역을 지적한 것과는 달리 역량있는 소설가들이 번역을 통해 직역에서 오는 어색한 단어, 문장 대신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우리말’ 문장으로 완성도 높은 번역본을 완성해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사진=새움출판사
■ 논란의 새움출판사가 말하는 번역이란
올바른 번역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는 이유만으로 적잖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새움출판사 역시 사실 이 기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독자들에게 완벽한 원문의 의미를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출판사의 색깔은 분명해서 좋지만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과 번역가들은 틀렸다는 단정적인 어투는 다분히 공격적이고 부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새움출판사에 대한 문학계의 반응은 새움출판사의 개성과 목표를 인정하기보다 그 공격성에 맞대응하며 비판하는 추세다.
“원문의 쉼표 하나까지 살려야만 한다”는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옮긴 ‘완벽한’ 직역이 옳다는 얘기”로 옮겨지는 등 그간 ‘직역’ 논란에 휩싸여왔던 새움출판사 이정서 대표.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번역은 ‘의역’이다. 나는 타 언어를 일대일 대응해 옮긴다는 의미로서의 ‘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린애도 아는 상식이다”라며 “내가 주장하는 ‘직역’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의역’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정역’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래 작가가 쓴 문장구조까지 살린 ‘정확한 번역’을 말한다”고 그간 자신이 말한 ‘직역’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았다. 자신이 ‘정역’ 번역을 하기로 한 이유도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번역본의 원작 느낌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그는 문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역시 한순간에 읽히는 흥미로운 소설이 ‘난해하기만 한’ 소설로 분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고전의 재미를 알려면 ‘직역(정역)’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담아 문장을 고른다. 수십, 수백 번 고쳐가며 만든 문장을 역자가 임의로 해체시켜 놓고 원뜻이 정확히 옮겨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해체한 의역이 원래의 내밀한 의미를 망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번역 공모전을 치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번역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께 고민할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나 인식의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영어를 잘 아는 이라 해도 직접 번역을 해봐야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정서 대표는 원작자의 의도적 단어마저도 함축하고 건너뛰는 의역이 국내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닌 번역자가 적당히 포기하고 타협한 편의일 뿐이라며 “타 언어를 옮기는 일이기에 정확할 수 없다고 변명하며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런 문장을 만나면 그 의미를 정확히 옮기려 작가처럼 밤을 새야 한다. 그러면 보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지향하는 번역에 대해선 “힘들더라도 번역은 반드시 작가의 문체를 살려야 한다. 쉼표는 쉼표대로, 대명사는 대명사대로, 서술어대로. 결코 완벽한 번역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최대한 원뜻에 근접해 갈 수 있는 번역은 작가의 문장 구조를 유지할 때라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각 책표지
■ '오역'을 지양하자…끊임없는 노력
문학계 번역가들의 자정 노력도 끊이지 않는다. 번역가 김남주는 자신의 책 ‘사라지는 번역자들’ 132쪽에서 “로런스 베누티는 번역자의 자리에 대해 말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투명한 필터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못하는 번역자가 어떻게 도착 언어로 원본을 재구성하는가’ 그러니까 베누티에 의하면 번역자는 결코 사라져서는 안될 존재다. 겸손과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출발어와 도착어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홀로 말의 봇짐을 지고 그 무게를 견딘다. 이국어의 문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을 환기하면서 자신의 언어로 데려온다”고 했다. 111쪽에서는 세계인의 같은 정서와 다른 언어를 언급하며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 너머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번역은 통역과 갈라진다”고 짚었다. 한 인터뷰에서도 굳이 의역과 직역 중 한 쪽에 선다면 ‘부정한 미녀’(직역)보다는 ‘정숙한 추녀’(의역) 쪽에 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이희재는 ‘번역의 탄생’에서 한국인들이 말할 때 더 자연스러운 ‘입말’을 지양하다가 외국어로 된 여러 글을 번역하면서 오히려 한국어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한국어의 색을 잃고 영어나 일본어 말투에 물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잃어버린 한국어를 찾아 한국인 정서나 문화에 맞게 의역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앞선 이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가 말하는 바는 결국 하나다. 정확한 직역, 원작자의 의미와 의도를 자연스럽게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의역.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최선을 선택할 뿐 직역과 의역 중 어느 것 하나가 옳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면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거나 책의 매력을 잃게 된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의역을 빙자한 오역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문학계 번역 관련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번역자들의 권력도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예전에 한 유명 번역가가 의역이라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오역을 한 적 있다”면서 “독자들의 반발이 예상됐지만 출판사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형 출판사라면 모르겠지만 막 입지를 다져가는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잘 나가는 번역가에게 말을 했다 예정된 작품들까지 엎어질 수 있어서 말하지 못했다”고 일화를 밝혔다. 그는 “그 번역가는 예민하기까지 해서 다른 출판사도 지적이나 건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간에 번역가들의 수입이 변변치 못하다고 하지만 일부 번역가들은 예외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독자들이 온라인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내고 있어 번역가들도 주시한다. 독자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이나 출판사들이 번역가 모집으로 이같은 폐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