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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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고 정확하게 전체를 아우르는 그 시선. 단순한 열정과 노력이 아닌 소명 혹은 천명으로 글을 쓴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우리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조정래다.

조정래 작가는 과거를 통해 현재 우리 삶의 가치를 조명해왔고 그 스스로도 우리 사회를 둘러싼 각종 문제에 나서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능력은 두말 할 것 없다. 올해 만 나이 76세가 된 조정래 작가는 ‘천년의 질문’을 통해 또 한번 독자를 뒤흔들었고, 서점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올해의 작가’로 꼽았다.

작가 조정래를 말할 때 그의 아버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문학 원천이자 안내자였기 때문. 조정래 작가는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승려 시인 조종현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절에서 보냈다.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 무상분배하자 주장했다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당할 뻔하기도 했던 아버지는 결국 절에서 쫓겨나 고교 국어교사로 살았다. 조정래 작가의 생물학적 뿌리이자 문학의 원천이기도 한 그의 아버지. 조정래 작가는 아버지를 통해 본 세상으로 문학의 원형질을 쌓아나갔고 ‘태백산맥’의 법일스님이란 캐릭터는 좌익으로 몰렸던 그의 아버지 그 자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삶이 대하소설을 통해 한민족 현대사를 깊이있게 그려내 온 조정래 작가 문학세계를 구축해줬다면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시조는 아들 조정래를 매료해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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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세대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과 갈등에 일침하는 거장

국내 현대사를 다룬 문학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정래 작가의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태백산맥’이다. 출간 31년째인 ‘태백산맥’은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후부터 보수 관련 단체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벌교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하루 몇통씩 죽이겠다는 협박전화를 받는 등 핍박받으며 집필을 이어나간 조정래 작가의 고생담이 고스란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논쟁은 끊이지 않지만 문학작품으로서 ‘태백산맥’은 분단의 역사와 인간이란 존재의 근본적 성찰을 하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20세기 한국문학의 가장 영향력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약 85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두고 그는 ‘태백산맥’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아시아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분단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 소설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실”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의 목적이 분단극복 후 남북통일을 지향하자는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단 ‘태백산맥’ 뿐이랴. 조정래 작가는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등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에게 역사를 돌려줬고, 생각을 일깨워왔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독자들에 화두를 던진 그다. 그는 2016년 한 방송을 통해 3년 후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소설을 써보려 한다고 밝혔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져 ‘천년의 질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을 두고 조정래 작가는 “손자 세대만큼은 우리 자식세대가 겪은 이런 모순과 갈등과 문제점을 겪지 않는 정상국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작가의 의지 때문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원고지 3600매, 취재수첩만 130권. ‘천년의 질문’에는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걱정하는 조정래 작가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수천년간 되풀이됐던 질문을 자신에게 묻고 각계 각층 인사 80여 명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 나간다. 국내 사회의 양극화 보고서이기도 한 ‘천년의 질문’에서 조정래 작가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켜온 한국 사회 자본과 권력에 분노하며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북핵 문제와 경제 위기, 사회 전반과 정치 문제 등에 쓴소리와 함께 과감한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출간 당시 그는 MBC를 통해 “상식 이하의 것을 가지고 끝없는 시간을 소모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을 찾기를 바랍니다”라고 일갈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은 ‘이 시대 참어른’이란 반응으로 화답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으며 개인의 안위만 최우선인 권력자에 분노하고 시민이 감시자로서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주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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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의 다양한 얼굴 : 손자바보 할아버지, 여전히 노력하는 노작가

이처럼 사회에 나서는 작가로 대표되는 조정래. 그러나 그가 작품과 활동을 통해 구축해 온 이미지는 한권의 책으로 반전되기도 한다. 오롯이 할아버지의 마음만으로 손자와 함께 써내려간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다. 2018년 출간된 이 책은 그가 손자와 함께 한 논술공부를 담은 책이었다. 불합리한 사회에 격분하던 시대의 어른이 온화한 할아버지의 얼굴로 변모하며 적잖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던 책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가 인생에 남다른 가치를 더한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손자는 황혼의 인생들에게 하늘이 준 마지막 선물이다.(중략) 아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더 고약한 일이 벌어졌다. 현실 감각 무딘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공부가 대학 입시를 향하여 1학년 때부터 얼마나 치열하고 광적으로 전개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가까워졌는데 만남은 더 멀어졌으니 할아버지의 절절한 그리움은 더욱 애타게 사무칠 뿐이었다. 그 못된 교육 제도 때문에 이렇게 속절없이 손자를 빼앗겨야 하다니…”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中)

할아버지 조정래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정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거장과 고2의 손자와 논술배틀로 독자들에 새로운 즐거움과 앎의 시간을 선사했다.

시대 앞에 당당하고, 피붙이에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70대의 노작가는 여전히 하루 수많은 시간을 작품에 할애한다. 소설을 쓸 때는 하루 13시간도 꿈쩍 않고 그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글의 감옥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거장. “예술로 남을 감동시키려면 노력하지 않고 되겠냐”(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그의 담담한 말은 거장이 되고 싶은 현 시대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