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작가 은희경이 내 놓은 ‘비밀과 거짓말’은 그간 독자들 곁에 머물던 ‘작가 은희경’의 성장을 보여준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도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더불어 작가로서 성장한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로 소설은 달라져 있었다. 그랬기에 언론은 ‘비밀과 거짓말’에 주목했고,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소설가가 된 지 올해로 십 년이 되었다. 이 책이 나이 여덟 번째 책이다. 그 동안의 할말은 어지간히 한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가는 경계에 섰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작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젊은 날 나의 거짓과 고독, 헛된 열정에 대한 마지막 사랑의 기록이다. 그리고 모든 유랑의 끝이 그렇듯이 마침내 다다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밀과 거짓말’ 집필이 은 작가에게 얼마나 고통을 안겼는지는 햇수로 3년 동안의 집필 기간이 이야기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을 통해 “너무 힘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며 “다시는 이런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다짐까지 해둔다.
2005년 당시 출간과 함께 진행된 각종 매체 인터뷰에서 은 작가는 “서른 살이 넘어 자기선호에 의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그것은 인습적인 것이라든지 과거의 부담을 털어내려는 선언에 다름아니다”면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향에서 멀어지려는 나를 고향이 놓아줬을까”라는 반문을 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설을 쓰면서 존재의 뿌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고, 쓰고 난 뒤에는 고향에서 멀어지려 하거나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 고요한 정점에 도달한 느낌이 스스로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은 작가는 ‘비밀과 거짓말’ 집필은 자신의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머물며 해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인 ‘어느 지방 소도시 K읍’은 필연적으로 고창과 닮아 있다.
■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산 자와 죽은 자들에 의한 회고
소설의 배경은 어느 지방의 소도시 K읍이다. 주인공인 영준의 성장기와 영준·영우 형제의 갈등과 화해가 고스란히 담긴 장소기도 하다. 이야기는 형제의 성장을 그린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두 형제와 아버지 정정욱의 이야기이다. 또한 K읍의 이야기이고, 저자 은희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아버지 정정욱의 죽음과 그가 남긴 유산인 집문서와 가문에서 내려오는 북으로부터 열린다.
오래 전 K읍의 채권자들에게 팔렸던 아버지의 집 중 일부가 한 여자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지금껏 아버지가 손수 그 여자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제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그 집을 팔아 돈을 여자에게 보내주라는 것이었다. 영우는 아버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정성일은 장남이 낚싯배 사고로 사망하자 며느리에게 상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바로 개가시킨 뒤 맏손녀인 명선을 벙어리 식모의 손에 맡겨 키웠다. 그러나 명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식모 취급을 받으며 고생하다가 열여덟 나이에 저수지에 몸을 던져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집을 팔아 명선에게 유산을 물려주라니! 죽은 사람 앞으로 재산을 남겼을 리는 없을 터. 영준과 영우 형제는 명선이라는 동명이인의 존재를 어림한다.
또 다른 명선은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이복 남매. 명선의 친모는 정씨 가문과 원수처럼 지내던 최씨 집안의 딸이다. 정정욱이 집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바깥 소생인 명선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 소설이 화해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제목은 ‘비밀과 거짓말’일까. 소설은 죽은 아버지 정정욱의 비밀과 거짓말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기꺼이 그 자신의 삶과 존재 가치를 찾아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