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산문화재단
(사진=대산문화재단)

지난해 가을 한국을 찾은 중국 작가 옌롄커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청년 작가로 김애란을 꼽았다. 그는 “김 작가의 ‘달려라 아비’를 우연히 읽게 됐는데 그 소설에서 강인한 힘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아주 섬세한 감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보고 80년대 이후 태어난 중국 동년배 작가들보다 ‘훨씬 힘있게 잘 쓰는 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밝힌 바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옌롄커로부터 이같은 찬사를 받은 김애란 작가는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며 명실공히 한국 대표 작가 중 한명으로 착실히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장편소설에 비해 단편 소설이 월등히 많고 이 때문에 단편을 기피하는 독자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김애란 작가. 그는 각종 상을 휩쓸며 문단의 사랑을 받는 한편 아주 사소한 생활의 일면부터 국가적 사고까지 소재로 다루며 독자들을 매료하고 있다.

김애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재학 중에 등단했다. 사범대에 가라는 어머니를 속인 후 몰래 한예종 시험을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4학년 때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고 ‘창작과비평’ 문예지에 작품이 실리며 등단한 혜성같은 존재다. 화려한 이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2년 만에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고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 내로라 하는 시상식에서 무려 9개의 상을 거머쥐며 문학계를 휩쓸었다. 2014년에는 2014년 프랑스 ‘주목받지 못한 문학상’의 외국 문학 부문을 ‘외딴 방’ 신경숙 작가 이후로 두번째로 수상하며 작품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수상 이력이 화려하지만 독자의 애정과는 거리가 먼 몇몇 작가와는 또 결이 다르다. 22살의 나이에 등단한 뒤 내놓은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인생’ ‘바깥은 여름’ 등은 출간 직후 화제를 모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어린 나이 등단했기에 초기 작품들과 요즘의 작품들은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김애란 작가 스스로도 지난 6월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냈을 당시 다양한 언론매체들을 통해 “학생 시절에는 생에 대한 낙관과 기대가 있었고 타인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면서 “실망과 회의와 의심을 지나 간직하게 된 한줌 따뜻함이 있다”고 자신의 시선이 보다 확장됐으며 내면 역시 성장과 변화를 거쳤다고 고백한 바다.

사진=창비
(사진=창비)

■ 나에서 우리로, 사회의 단상을 언어로 풀다

이같은 변화에 따라 김애란 작가의 작품들도 서서히 확장하는 단계를 거친다. 나의 이야기에서 너와 우리의 이야기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여실히 보인다. 데뷔 초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보통명사를 한 사람의 고유명사로 놓고 변주하던 그는 곧 세상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일상의 많은 모습들을 특유의 명랑함과 감수성으로 포착하며 공감을 얻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월호 사건을 다룬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 ‘입동’이라는 작품처럼 세상을 직시하기도 한다. 올해 출간한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는 아예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주변인물에 대한 단상, 여행, 삶의 순간들, 혐오사회, 대기업 해고 노동자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작가로서 살아오며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집약해 담아냈다. 그가 작가로서 걸어온 길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이 산문집을 통해 펼쳐진 것이다.

스스로의 성장과 함께 언어에 대한 세심함과 공간에 대한 사랑은 김애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김애란 작가의 손을 거쳐 자취방, 식당, 편의점 하다못해 하릴 없는 거리까지 평범한 것이 아닌 의미있는 공간이 되고 그 안에서 캐릭터는 보여지는 면이 아닌 뒷면과 속내를 조명한 작가 덕에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다. 더욱이 고르고 고른 어려운 단어들로 독자의 독서를 해치는 대신 어렵지 않은 단어로 신선함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같은 공들임은 작가로서, 이야기꾼으로서 살아가는 김애란 작가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김애란 작가는 보그 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직업적 자세가 몸에 배면서 생기는 삶의 변화를 점점 더 느끼고 있다”면서 “내가 잘 묘사해야 잘 전달되니 잘 느끼고 보고 감각하고 맛보며 안 해본 일을 하려고 해요. 원래 가진 기질보다 좀더 용기 내고 모험하는 것 같다”고 글을 쓰며 자신의 성격과 몸이 변했고 그것들이 세상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한 바다.

김애란 작가는 글을 쓰고 싶어 부모를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인생 선택권을 놓지 않은 인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세계 역시 하나의 원칙으로 굳건하게,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그의 원칙, 글쓰기의 행복이다. 김애란 작가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훗날 매체 환경이 변하거나 독자가 줄어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해도, 글쓰기 자체만이 나에게 주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한다"고 깊은 진심을 드러낸 바다.

단편소설을 많이 썼고 이제야 산문집을 낸 그는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짧게, 인상적이고 감각적이며 특유의 유머와 삶의 눈물을 뒤섞어 선사해왔던 김애란 작가가 긴 호흡으로 풀어낼 이야기가 어떨지, 언어와 공간에 대한 시선적 매력에 더해 또 어떤 매력을 드러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